처음 이 영화에 대한 비판을 들었을 때는 “왜 현대사를 관통하는 가운데 광주가 없냐?”라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듣고 피식 웃었습니다. 모든 스토리텔링을 어떻게든 정치적 관점으로 읽어내려는 욕망이 있지요. 특히 생각 좀 하고 산다는 사람들 사이에는요.
하지만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오늘 같은 사회에서는 항상 조심해야 하는 태도입니다. 비록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필히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고 해도 말이죠. 스토리텔러는 자신의 관점에 따라 역사적 사건을 취사선택하고 해석할 권한이 있습니다. 작품의 세계에서는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 조차도 그 사건의 주인은 창작자 자신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선적 따져야 할 것은, 그 사건의 취사선택과 해석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느냐가 아닌가 싶습니다.
솔직히, 영화를 보기도 전에 선입관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예고편을 봤는데 주인공이 “이렇게 힘든 세상을 우리 자식들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이런 ...대사가 나오더라구요. 끝 간 데 없는 한국형 신파극! 감격주의! 무조건 감동감화교통하라는 감성주의 영화?!?! 라는 경고음이 전신을 휘둘렀습니다.
감독이 윤제균이라는 사실을 알고 경고음은 데프콘 수준으로 격상되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단순한 화법으로는 따라갈 자가 없는 감독이 윤제균이죠. 언제나 딱 하나만 팝니다다.
<색즉시공>에서는 매 씬 마다 “B급! B급! B급!”을 외칩니다. B급 영화에서 허용 가능한 모든 장면이 나오는 듯.
<낭만자객>에서는 매 씬 마다 “웃어!” “웃어!” “웃어!” 라고 외쳐요. 보는 관객이 전혀 웃기지도 않지만 웃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려 새파랗게 질려 나올 때 까지.
<해운대>에서는 한 영화 안에 대여섯 가지의 신파 폭탄을 퍼붓는 전무후무한 시도도 선보였죠. 한국형 재난블록버스터를 보러 갔는데, 장면 마다 홍도야 울지마라급의 구구절절한 사연과 희생정신이 해일처럼 강타해오는 신파블록버스터가 나옵디다. 전정한 ‘ENDLESS 신파’라 할 수 있습니다.
막상 영화를 보니, 생각한 것만큼 구질구질한 신파로 흘러가지는 않았습니다. 주인공 황정민의 이야기가 가슴을 적셨던 이유는 한국 현대사가 그만큼 격정적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오래전부터 한국의 이산가족과 그 상봉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서사극을 영화관에서 보고 싶은 욕구가 있었는데, 이번에 그것을 충족할 수 있어서 기뻤어요. 가족과 생이별하여 고생하며 살아온 우리 조부, 조모들의 시대를 그린다는 영화 의도 역시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바입니다 조정래의 소설 <한강>에서 주인공 유일민과 천두만 아저씨의 이야기가 자연스레 떠오르더군요. 사실 한국의 격정적인 현대사를 살아낸 인물들에 대한 작품을 그렸을 때, 눈물 없이 볼 수 있는 이야기가 얼마나 될까요.
하지만 영화의 조악한 스토리텔링은 여러모로 거슬렸습니다.
흥남철수는 역사 속에서도 무척이나 인상적인 사건이지만, 영화 속 한국 장교는 왜 그렇게 비현실적으로 징징거릴까요.(우리 불쌍한 국민들 두고 가면 안돼요~!)
파독 광부들의 기본적으로 가슴을 저미는 스토리이건만, 왜 이렇게까지 비장미가 철철 넘쳐야 하나요. 베트남에의 주인공은 또 왜 이렇게 처절하게 고난스럽고 희생적인가요.(이산가족 상봉은 눈물을 펑펑 안 흘릴 수 없는 이야기이니 걍 넘어갑니다만...)
언제나처럼 윤제균의 스토리는 각 씬들이 따로따로 노는 듯 하고, 각 씬은 생각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철저하게 격정적이고, 모든 감성들을 직설적입니다. “나 너무 힘들었어요.”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건만, 내러티브로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장면이 직접 힘들다고 말하게 합니다. 결국 청중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해석의 자리도 사라지고, 감동도 반감됩니다. 교회 다니시는 분은 알겠지만, 설교 중에 문장이 끝날 때 마다 “아멘?” 하면서 청중의 응답을 받아내려는 설교자 같다할까요.
<국제시장>은 주인공 황정민의 이야기를 지나치게 극적으로 그리는 바람에 오히려 눈물만 펑펑 흘렸을 뿐, 윗세대와의 소통이라는 더 거시적인 공감을 구성하는 데는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저렇게 처절하게 고생을 하고도 OECD 평균을 훨씬 웃도는 50% 수준의 노년 빈곤률을 자랑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죠. 단순히 울고 감사하다고 넘어가기에는 문제의 심각성이 너무 크고, 세대간의 갈등도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뭐 관객들이야 울기 위해 갔을 수도 있겠지만, 평론가들은 이 부분에서 그냥 넘어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을 것입니다.
이미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영화 평론가들에게 오늘날 <국제시장> 같은 스토리텔링이 과연 먹힐 수 있었을까요. 하나같이 5점대에 머무는 영화 평론가들의 평가는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좋은 소제를 가지고 누군가가 대작을 만들 것이라는 오랜 기다림이 있었건만 그냥 <국제시장> 정도가 나왔다는 느낌이네요. 영화에 관한 정치적인 평가들도 그저 허망할 뿐입니다. 천 만 관객 영화를 연거푸 찍어내는 감독에 대한 평가 치고는 너무 박할 수 있지만, 전 정말 이 감독의 영화 연출하는 방법이 별로인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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