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기 전에 기사에서 “국가 권력에 맞서 자신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처절하게 싸우는 가장...” 뭐 이런 글귀를 읽었습니다.
요즘 기자들, 작품을 보지도 않고 기사를 싸지른다더니 정말인가보네요. 딸의 백혈병 산재를 인정받기 위해 투쟁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나, 부패한 사법부를 겨냥한 [부러진 화살] 같은 영화인 줄 알았습니다. 전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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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철저하게 제목 그대로입니다. “리바이어던”. 성서 욥기에서 세상을 지배하는 세속의 신으로 언급된 괴물. 홉스가 세상을 합법적으로 통치하는 신성한 권력이라 칭한 ‘국가’가 영화의 주인공입니다. 영화에서 터전을 지키기 위해 주인공이 벌이는 투쟁은 아주 잠깐 나올 뿐이죠. 처절하지도, 비장하지도 않습니다. 인연이 닿아 있는 조금 힘 있는 변호사를 통해 저항하지만 그 역시 이러저러한 개인사에 밀려 허망하게 사라집니다. 그리고 비관과 방황만이 남습니다.

철저한 악당이자, 관객의 분노가 응집되어야 할 시장 역시 정작 별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시장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권력을 동원하여 자신의 사업을 벌입니다. 비열하고 악랄한 시장이 아니라, 동네 조폭 같은 시시껄렁한 시장입니다.
종교 역시 등장합니다. 영성체를 잘하고 있는지, 신앙 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세밀하게 시장을 치리할 정도로 막강한 권력자입니다. 그러나 정작 부패한 권력에 개입하거나, 그와 관련된 일체의 대화에는 끼지 않습니다. 그는 사랑과 진리의 힘을 가지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세력과의 싸움을 끝까지 해내자고 장엄하게 선포할 뿐이죠.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언급한 바로 그 신성한 역할 말입니다. 종교 역시 그렇게 분노의 자리에서 빠져나갑니다.
그 뒤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바로 ‘국가’입니다.

이렇게 영화는 힘없이 어지러진 개인들 위에 너무나 압도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국가 권력’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잠시나마 무기력한 저항을 벌였던 집주인은 세세한 부분까지 파고드는 국가의 힘 앞에 완전하게 인수분해 당합니다. 그 뒤처리를 하고 남은 것을 돌보는 역할 역시 ‘국가’의 몫입니다.

반복적으로 카메라에 담긴 러시아의 장엄한 대자연은 처음에는 아름답게 비춰졌지만, 그 대자연은 묘하게 국가 권력처럼 오버렙 되면서 관객의 숨통을 죄어옵니다. 이처럼 미장센만으로 국가 권력의 압도적인 위용을 그린 영화를 최근에 보지 못했습니다.

조금의 저항도 용납하지 않는 국가의 폭력에, 무기력한 개인은 “왜 하필 저입니까?”하고 울부짓을 수만 있을 뿐입니다. 여기서 욥기가 가관입니다. 신이 허락한 권력 앞에 저항하거나 분노하지 말라. 그저 운명으로 받아들여라.

영화를 보고 나와서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보니, 감독은 보고 나서 체념하라고 이러한 영화를 그린 것은 아닌 듯 합니다. 그러나 영화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가까운 리얼한 현실, 그리고 사실이니 진리라고 하는 것이 힘 앞에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지나치게 생생하게 그려냈습니다.
가벼운 분노를 일으키고자 한다면 절대 피해야할 영화입니다. 괜히 잘못 건드렸다간 소주에 보드카를 말아서 마셔야 할 테니까요.

Posted by 밍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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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다'고 목놓아 외치고, '슬프다'고 눈물 펑펑 흘리며 울부짓고, '기쁘다'며 미친듯이 웃어제껴야 하는 영화들의 홍수입니다. 그 안에서 관객은 정작 아픔도, 슬픔도, 기쁨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무척 오랜만에 만나는 동유럽 영화이자, 흑백영화인 "이다".

색깔도 없는 흑백 영화에 대사도 적고, OST 는 무척이나 정제되어 흐릅니다. 그럼에도 어떤 영화보다 풍성합니다.

세속의 삶과 신앙의 삶을 대비시키지만, 성당은 답답한 곳, 세속을 자유로운 세계로, 혹은 허무한 세속과 신비로운 성당의 세계라고 함부로 대비시키지 않습니다. 폴란드 유대인들의 슬픈 역사, 가톨릭 신앙, 공산주의가 단 한 번도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그 모든 무게가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흑백이라는 단순한 음영 속에, 똑같이 흑백으로 단순하게 비추어진 두 여인의 삶이 어우러집니다. 그리고 서로 음영을 주고 받습니다. 그렇게 숭고한 신앙도, 핏빛의 역사도, 개인의 존재도 다 관객 앞에 '이해'라는 이름으로 다가옵니다.

간만에 무척이나 추천하고 싶은 영화를 만났습니다. 기회가 되면 꼭 보러들 가시길^^

Posted by 밍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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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터졌습니다. 영화 상영관 독점에 대한 논쟁이.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줄여서 ‘개훔방’)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배급사 [리틀빅 픽쳐스]의 엄용훈 대표가 사임을 했습니다. 중소규모 영화 제작사들이 자신들의 영화를 안정적으로 배급하기 위해 모여서 만든 것이 '리틀빅'이죠. 그리고 이들은 본인들의 영화를 상영해 줄 전용 영화관이 없습니다.

CJ나 롯데, 쇼박스는 각각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를 쥐고 있고, 한국 영화 시장을 최대 95%까지 좌지우지 하고 있다고 하네요.
자신들의 영화를 오랫동안 상영해달라고 애걸복걸해야 하는 영화관 없는 배급사들. 서러울 만도 하죠. 사임한 엄용훈 대표는 억울한 심정을 담은 장문의 글을 청와대 게시판에도 올렸더군요.

독립 영화 제작사들이 모여서 리틀빅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들이 배급하는 영화를 꼭 챙겨보리라 결심했었습니다. 나름 한국 영화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내린 결정입니다. 대형 멀티플렉스를 멀리하고 군소형 영화관들을 돌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너무나 가까운 영화관의 거리와,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상영관의 수준과, 각종 포인트 및 쿠폰에 완전히 익숙해져 그러기는 너무 힘들더군요. 대신 독과점 속에서 한국 영화들의 다양성이 사라지지 않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리틀빅의 행보는 개인적으로 아쉽습니다. 리틀빅의 영화들이 다른 배급사들과 차별된 영화라는 느낌을 아직까지 전혀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녀괴담>은 “귀신에 인간애를 입힌다”는 한국 공포영화계의 전형적인 공식 그대로였습니다(심지어 그걸 잘 살렸다는 생각도 들지 않구요).

 

영화 <카트>는 비정규직 실업 문제를 다룬 것 까지는 장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해서 똑같이 실업 문제를 다룬 ‘마리옹 꼬띠아르’의 <내일을 위한 시간>이 실업의 스트레스, 갈등, 인간관계, 마침내 성장까지 이루어내는 하나의 스토리를 구성했다면 <카트>는 ‘억울하고 슬프다’ 이외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이번에 청춘 영화로 개봉한 <내 심장을 쏴라> 역시 정신병동에 같인 청춘들의 속박과 자유를 다루었지만, 옛날 사용했던 방법들의 재탕 삼탕이었습니다. 역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주제로 개봉한 ‘자비에 돌란’의 <마더>랑 비교해서 크게 아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수익 중심의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새로운 영화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미 기존의 국내 배급사들은 영화관 관객이 2억 명이 넘는 시대에 취해 새로운 시도를 갈수록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천 만이 넘는 한국 영화들은 수두룩하지만, 3~600만 정도 되던 중대박 영화들이 확 줄어든 2014년의 모습이 그렇죠. 독점 영화관 없이 새로운 시도들을 많이 선보여서 성공했던 ‘넥스트 엔터테인먼트(줄여서 NEW)’도 이제 배급하는 영화들이 하나같이 기존의 대형 배급사이 기획한 영화들과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결국 한국 영화를 감상할 때 마다 비슷한 구성과 전개에 영화에 대한 아쉬움과 갈증만 더해가네요.

그렇지 않아도 자본과 기획력이 딸리는데, 새로운 영화를 선보이라는 요구가 얼마나 힘든지 압니다. 그래도 계속해서 새롭게 시도해야 합니다. 작품이 충분히 경쟁력이 있으면 CJ나 롯데, 쇼박스도 함부로 무시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NEW가 배급한 영화들은 2013년에 한국 시장 점유율이 1위였죠). 그에 비해, 작품 수준이 비슷하면 당연히 자기들이 만든 작품으로 확 돌아섭니다.

이 논리는 결국 대형 배급사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영화 수준이 비슷하다면 헐리우드가 만든 블록버스터급 영화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갈수록 헐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많이 개봉하는데다가 프랑스, 일본, 인도 같은 나라에서 볼만한 작품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습니다. 국내의 대형 기획사들도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해야만 지금의 한국 영화 전성기를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오늘, 시간이 도저히 맞지 않아서 못 보던 개훔방을 드디어 보았네요. 압도적인 포스를 보여주시는 김혜자 여사께서 나오시고, 오랜만에 강혜정의 색깔 있는 연기도 볼 수 있었습니다. 영화 ‘소원’에 이어, 아역배우 이레의 연기는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경제적 어려움 끝에 깨어지는 가정의 문제를 아이들의 시각으로 다루었습니다. 참신한 연출도 돋보이고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만족할 만큼 충분히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북미나 유럽과 다르게 아이들을 중심으로 한 가족 영화는 좀처럼 뜨지 않는 곳이 우리나라죠. 개훔방의 실패가 단순히 독점 배급 문제 때문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여전히 ‘리틀빅 픽쳐스’의 배급 영화들은 ALL관람 하면서요! 항상 화이팅입니다~!

Posted by 밍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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