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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3.24 권력에 저항하고 한다면 피해야할 영화 <리바이어던>

 

 

영화를 보기 전에 기사에서 “국가 권력에 맞서 자신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처절하게 싸우는 가장...” 뭐 이런 글귀를 읽었습니다.
요즘 기자들, 작품을 보지도 않고 기사를 싸지른다더니 정말인가보네요. 딸의 백혈병 산재를 인정받기 위해 투쟁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나, 부패한 사법부를 겨냥한 [부러진 화살] 같은 영화인 줄 알았습니다. 전혀 아닙니다.

...

영화는 철저하게 제목 그대로입니다. “리바이어던”. 성서 욥기에서 세상을 지배하는 세속의 신으로 언급된 괴물. 홉스가 세상을 합법적으로 통치하는 신성한 권력이라 칭한 ‘국가’가 영화의 주인공입니다. 영화에서 터전을 지키기 위해 주인공이 벌이는 투쟁은 아주 잠깐 나올 뿐이죠. 처절하지도, 비장하지도 않습니다. 인연이 닿아 있는 조금 힘 있는 변호사를 통해 저항하지만 그 역시 이러저러한 개인사에 밀려 허망하게 사라집니다. 그리고 비관과 방황만이 남습니다.

철저한 악당이자, 관객의 분노가 응집되어야 할 시장 역시 정작 별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시장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권력을 동원하여 자신의 사업을 벌입니다. 비열하고 악랄한 시장이 아니라, 동네 조폭 같은 시시껄렁한 시장입니다.
종교 역시 등장합니다. 영성체를 잘하고 있는지, 신앙 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세밀하게 시장을 치리할 정도로 막강한 권력자입니다. 그러나 정작 부패한 권력에 개입하거나, 그와 관련된 일체의 대화에는 끼지 않습니다. 그는 사랑과 진리의 힘을 가지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세력과의 싸움을 끝까지 해내자고 장엄하게 선포할 뿐이죠.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언급한 바로 그 신성한 역할 말입니다. 종교 역시 그렇게 분노의 자리에서 빠져나갑니다.
그 뒤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바로 ‘국가’입니다.

이렇게 영화는 힘없이 어지러진 개인들 위에 너무나 압도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국가 권력’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잠시나마 무기력한 저항을 벌였던 집주인은 세세한 부분까지 파고드는 국가의 힘 앞에 완전하게 인수분해 당합니다. 그 뒤처리를 하고 남은 것을 돌보는 역할 역시 ‘국가’의 몫입니다.

반복적으로 카메라에 담긴 러시아의 장엄한 대자연은 처음에는 아름답게 비춰졌지만, 그 대자연은 묘하게 국가 권력처럼 오버렙 되면서 관객의 숨통을 죄어옵니다. 이처럼 미장센만으로 국가 권력의 압도적인 위용을 그린 영화를 최근에 보지 못했습니다.

조금의 저항도 용납하지 않는 국가의 폭력에, 무기력한 개인은 “왜 하필 저입니까?”하고 울부짓을 수만 있을 뿐입니다. 여기서 욥기가 가관입니다. 신이 허락한 권력 앞에 저항하거나 분노하지 말라. 그저 운명으로 받아들여라.

영화를 보고 나와서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보니, 감독은 보고 나서 체념하라고 이러한 영화를 그린 것은 아닌 듯 합니다. 그러나 영화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가까운 리얼한 현실, 그리고 사실이니 진리라고 하는 것이 힘 앞에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지나치게 생생하게 그려냈습니다.
가벼운 분노를 일으키고자 한다면 절대 피해야할 영화입니다. 괜히 잘못 건드렸다간 소주에 보드카를 말아서 마셔야 할 테니까요.

Posted by 밍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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